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에세이

제법 안온한 날들 By 남궁인

by 크레이지인북스 2020. 12. 5.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눈에 보이는 안온한 날과 그렇지 못한 날들의 단상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 안온한 날의 단상과 절대 안온하지 않고, 다급한 응급실에서 평범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게 느낀 그만의 시선을 다룬 에세이다. 사실 생업이 의사인 작가들의 소재는 참 특별하기도, 혹은 예측 가능한 것이라 기대감을 갖고 본다. 메디칼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죽음의 기로앞에 서 있는 환자를 위해 어떤 일들이 독자들에게 희망과 생각을 줄까하고 여분의 상상력을 남겨둔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앞부분은 의사인 작가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여자친구이야기, 여행에서 친해진 친구이야기, 술 이야기, 작가 본인의 병력을 스스로 밝힘으로 의사로써의 환자들과의 공감을 나타내는 부분은 살짝 짠한 기분도 들었다.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을 가장 본질적으로, 그리고 깊숙이 알 수 있는 글이다. 남궁인 작가의 머릿속 생각을 부분적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글들이 그의 일터 응급실에서 생긴 일들과 빗대어진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이것은 응급실이 그의 일터이고 거기서 그는 삶과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과 촌각을 다투는 생존게임을 한다.

 

 

삶과 죽음은 그에게 일상과 같은 것이고, 생명의 경중을 떠나서 의사의 본분으로 환자의 배경 따위는 잊고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적은 부분은 나도 모르게 휘말려들어가는 기분에 몸소리쳤다.

 

 

작가 본인도 사람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그도 느끼며 그의 시선을 보탠다.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혹은 동정이나 애틋함을 함께 느낀다. 환자를 나의 돈벌이 수단이 아닌 공감과 따뜻한 체온을 남겨줄 생명으로 보고 있을 때 사실 그의 진정성도 살짝 느꼈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응급실. 생과 사의 길목에서 의사의 판단 하나로 환자의 운명이 달라지는 곳, 완전치 못한 인간이 온전치 못한 인간을 고쳐야 하는 아이러니의 곳, 의사의 헌신과 신념이 환자의 인격적, 인간적 생명을 담보하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다. 일분과 일초사이에 수많은 생각과 선택을 해야하는 곳에서 그의 생각을 결정하게 하는 한가지 철학은 무엇인가?

작가는 응급실이라는 곳에서 죽음의 가장 큰 동반자이기도 하다. 하룻밤 사이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사망선고를 내리는 일차적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하고 누구나 그것을 거역할 수 없음도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죽음 앞에 가장 담담할 수 있다.

 

몇 가지 그의 생각을 가져본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우리는 주저앉는 존재가 아니다.

Extreme Poverty는 왜?

수많은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어차피 누구든 본질적으로 죽음에 항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열사병, 그것은 부유함과 빈곤의 차이

오늘 오후 죽을 운명인데, 오전에 난 무엇을? 투표를?

괴물위탁모, 아동학대

삶의 의미는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있다. (p279)

 

 

아동학대를 다룬 <증언할 용기>, 실수로 함께 일하는 동료를 하늘로 보낸 <동료>,몇날 몇일을 아들을 위한 마음으로 결국 다시 살게된 아들이야기 <어머니> , 눈물이 필요한 꼭지는 드라마같은 인생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비극이든 아니든, 환자의 생명을 살리든, 응급실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쓸모를 못 느낄 정도의 안온함을 작가는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제목이 <제법 안온한 날들>아닐까?